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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단하면 남이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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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BS보도 작성일18-08-06 13:57 조회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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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단하면 남이 수월하다"

 

대중·공익위해 평생 바친 '영축산의 달' 월하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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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참 스승이 그립습니다! 기획보도, 오늘은 불지종가 국지대찰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과 조계종 종정을 지낸 노천당 월하대종사를 조명합니다.


이와 사를 두루 겸비한 스님은 사찰내 폐습을 일소하고 불교정화운동과 종단개혁에 앞장서는 등 어지럽고 혼란한 시대에 비구다운 삶을 산 참스승이었습니다.


'영축산의 달빛'과도 같은 스님의 가르침은 이 시대 수행자들의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울산BBS 박상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내가 고단하면 남이 수월하다"

 

'영축산의 달' 월하스님이 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가르침입니다.

 

[인서트]오심스님/월하스님 상좌·불교중앙박물관장 - "누가 할일이면 내가하고 언제 할일이면 지금하고 지금할 일이면 더 잘하자, 그런 말씀을 항상 하셨습니다. 그런 강직한 모습이 조계종의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여덟의 나이로 금강산 유점사에서 출가한 월하스님은 1940년 '영축산의 도인', '조선불교의 거인'이라 불리던 통도사 구하스님의 전법제자가 됐습니다.

 

이후 늘 근검절약하고 대중과 공익을 위한 일이라면 항상 먼저 앞장섰습니다.

 

이와 사를 두루 겸비했던 스님은 특히 1954년 불교정화운동 뿐만 아니라 1994년 종단개혁 때는 개혁회의 의장직을 맡아 우리나라 불교를 바로 세웠습니다.

 

[인서트]오심스님/월하스님 상좌 - "스님께서는 정화 때 항상 선봉에 나서셨고, 정화 때나 1993년도 개혁회의 의장을 맡으셔서 당신의 바른 모습이라 생각하시면 끝까지 같이 가시고 선봉에 나서시고 하셨던 모습들이 보이십니다. 스님의 올곧은 정신이 지금도 통도사에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또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와 방장, 동국학원 재단이사장,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정 등을 역임한 종단의 큰어른으로, 지도자들을 향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인서트]월하스님 / 1994년 BBS불교방송 인터뷰 中 - "속가나 절간이나 보면 자기 지도하는 분의 좋은건 제쳐놓고 나쁜것부터 배우고 본을 봅니다.. 밑에 사람을 봐서도 자기가 가지고 싶어도 안가져야지. 밑에 사람의 장래를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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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직을 두루 거친 스님이었지만 자리 욕심은 버려둔채 수행자의 청규를 지키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인서트]오심스님/월하스님 상좌 - "매사에 철저하시고 공과 사가 분명하시고.. 한번은 새벽에 인사 올리러 들어갔는데 방에 양말과 옷이 널려있는걸 봤습니다. "스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저희들이 빨면 됩니다"라고 했더니 "남이 빨면 마음에 안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솔선수범하시고, 직접 다 그릇도 씻고 빨래도 하시고, 항상 연장을 들고 계셔서 도량 곳곳에 당신의 손길이 안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사비를 모두 털어 불교계 최초의 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과 통도사 성보박물관을 세우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 건립기금을 쾌척하면서도 이를 외부로 알리지 말라고 했던 월하스님. 

 

통도사와 불교의 미래에 대해 노심초사하던 스님은 2003년 12월 4일 통도사 정변전에서 세수 89세, 법랍 71세로 열반에 들었지만 스님의 은은한 달빛같은 가르침은 모두의 가슴속에 살아 삶의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양산 통도사에서 BBS뉴스 박상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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